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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천사】 개발 후기

 

제작 비화나 본편에서 다루지 않는 이야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정보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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⓿  앞서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심판천사」를 플레이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해당 게임을 만들면서 한 달 동안 갖가지 노력과 시간이 주되긴 했으나, 다양한 관점에서 「심판천사」를 바라보는 여러분들이 있어서 이 게임이 더욱 의미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글에서는 개발 과정에서의 느낀 점들이나 각종 비화들이 주된 알맹이입니다. 혹시 게임에 대한 의견이나 질문이 있다면 언제든 환영합니다.

 

 

 

 


❶  제작 계기, 구상

 

일단 본인은 게임잼의 존재만 알고 있었지 직접적으로 참여해 본 경험은 없습니다. (이번이 최초입니다.) 당시 처음 알았을 시점에는 학생 신분이기도 했을뿐더러 알만툴류의 게임은 플레이만 주야장천 해 본 입장이었던 터라 꽤 멀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인연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어쩌다 보니 게임 개발 자체에 큰 흥미를 느껴 정신없이 임하고 있으려니 여기까지 온 입장입니다.

 

이루 말할 것 같으면 특히나 '게임성'에 많이 약한 본인인데, 그간 해온 알만툴 게임이나 취향에 맞았던 것들은 죄 10의 9할은 조사 어드벤처류의 공포 게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공포 게임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지식 전무. 관심이 없으니 마땅히 떠오르는 것도 없었고... 때문에 2025 게임잼 키워드를 처음 마주했을 때는 꽤나 곤혹이었지만... 괜찮았습니다.

 

 

당시의 고민

 

 

키워드. 직접적으로 플레이어의 눈에 띄는 시스템적 '역할 바꾸기'는 많이들 생각했을지언정 외적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내적 요소로 확실하게 작용하는 '역할 바꾸기'는 어떨까 싶어 현실적인 부분에서 고려한 아이디어를 차용했습니다. 여기서의 역할은 인간의 삶에서 중요하게 자리 잡는 '가치관'으로 상정하고 본격적으로 구상에 들어갔고요. (!)

 

선정한 아이디어 자체가 추상적이기도 하고 초장부터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 스토리 중점이다 보니 다른 게임들보다 눈에 덜 띌 우려가 있겠으나 즐겁게 만드는 몇 안 되는 기회,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기존에 만들어놓고 몇 년 동안 쓰이지 않던 캐릭터들을 재활용해보는 건 어떨까 싶어 고려한 선점 또한... 그래서 나온 친구들이 바로 흑백 쌍둥이. 료와 류입니다.

 

 

 

 


❷ 캐릭터 및 배경 비화

 

재활용된 캐릭터들을 꺼내다 보니, 그렇다면 게임의 스토리도 해당 캐릭터들의 초기 설정에 맞춰서 새로이 구상해 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애초에 기획과는 연이 없는 OC였기 때문에 별개로 작용되는 기존 작업물이었고, 당시 료와 류를 처음 만들었을 때 '하늘의 지령을 받고 내려온 쌍둥이 천사'라는 확고한 초기 설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적극 활용하기로 결정. 바로 착수했습니다.

 

태생적으로 인간에게 관심이 많으며 자신이 그들과 닮아가길 원하는 류, 질서라는 개념 중시와 그들이 남긴 궤적을 탐구하길 좋아하는 료. 누이인 류는 이미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전적이 있기 때문에 그의 형제인 료를 주인공으로 세웠습니다. 

 

 

에버그레이스 료

 

누이와 달리 아직 인간들에게 미숙한 천사, 료.

 

인게임 도트에서 별도의 카메라를 메고 있는 이유는 빛바랜 것을 좋아하고-인간의 궤적을 탐구하는 성향 때문입니다. (작업 과정에서 스탠딩과 엔딩 이미지에 카메라가 누락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만, 인게임 내에서 중요하게 작용하지는 않아서 그대로 진행했다는 비하인드.) 그렇기 때문에 각 심판을 올바르게 이행했을 경우 그에 연계되는 '카메라 필름'이라는 아이템이 나왔고요.

 

천사인 만큼 대게 자애롭고 여유로운 성격이나 '죄를 지은 자는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는 다소 극단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중에서 자신의 역할뿐만이 아닌 인간의 다양한 역할을 마주하는 일련의 사건을 몸소 겪었고, 굿엔딩 기준으로는 자신에게 없던 생명에 대한 자비심과 이해심을 깨닫고 변화에 있어서 여러 의미로서의 첫 발을 떼게 되었죠. 


그렇기 때문에 제 누이와 같은 역할이 된 료는 비로소 누이의 편지에 답신할 수 있었습니다만, 배드엔딩의 경우 그 어떤 것도 변주를 주지 못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누이의 행동을 모방하며 그들을 포용하려 했던 행위 역시 끝에 가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영화 '콘스탄틴'에 나오는 가브리엘이라는 캐릭터의 성향을 어느 정도 오마주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본래 두 쌍둥이의 결말을 생각하자면 배드엔딩이 서사적으로 정설이었습니다.

 

 

 

까마귀 씨

②초기 설정 (해당 컨셉아트는 '세라클로스' 공동 제작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료의 서포트 담당인 파트너, 까마귀 씨.

 

료를 중점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에 해당 캐릭터는 따로 다뤄지지 않았으나, 정체는 료보다 훨씬 연장자인 고위 악마입니다. 본래는 거대한 악마의 모습이었으나 대차게 털린 이후로 모종의 계약을 맺어 현재의 외형이 되었습니다. 

 

료와 달리 세상사에 조금 더 융통성이 있고 유도리 있는 면모가 강조되었습니다. 본디 악마란 존재들은 어느 구석에서는 천사들보다 유연한 면모가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오랜 친우이자 파트너, 료에게 심판자의 역할뿐만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의 역할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던 마음이 어느 정도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나오는 대사를 보면 은근히 유도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초기 기획에는 처음부터 파트너가 아닌 페이크 보스로 설정했기 때문에 일부러 스탠딩을 수상하게 그렸습니다만, 한번 구성이 엎어지면서 그 흔적만 고스란히 남은 사태가 발생. 또한 진행하면서 파트너력보다는 감당 안 되는 큰아들 보조해 주는 뉘앙스가 자리 잡은 점을 고려해 보면 여러모로 초기 기획에서 많이 동떨어진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본명은 말파스(Malphas). 솔로몬의 72 악마에서 참고했습니다.

 

 

 

초창기에서 지금까지

 

초창기 「심판천사」의 배경과 콘셉트는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아닌 느와르였기에 지금보다 더 어두운 느낌이었습니다. 심판의 천사라는 주인공의 기존 역할을 지금보다 훨씬 더 극대화한 엑소시즘 스토리였는데, 인간계에서 비밀리에 일종의 '의뢰'를 받으며 인간들 사이 숨어든 악마를 처단한다는 st의 다소... 과격한 이미지였습니다.

 

허나 이대로 진행하면 수위 상 문제도 있었고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통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아 조금 더 대중적인 느낌으로 환기하기로 결정. 느와르적 성향은 완전히 삭제하는 대신 아포칼립스적 요소를 가미했고, 이외 딥한 요소들은 현대 사회의 문제점으로 변경하면서 엑소시즘이 아닌 몰락한 도시에 떠도는 잘못된 영혼들을 인도한다는 설정이 자리 잡혔죠.

 

이후 대대적인 개편 이후로 지금의 「심판천사」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❸ 숨겨진 요소와 일부 의문점

 

 

⑴ 지도자의 흔적을 발견했을 시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과거 도시에 군림했던 '지도자'에 대한 언급이 종종 등장합니다. 지도자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침묵하는 말풍선이 나타나거나 바닥을 바라보는 모션이 일부 연출되는데, 이는 지도자를 단죄한 인물이 바로 본인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파트너가 직접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기 전까지 입을 닫고 있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도자와의 기억은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을지도요.

 

 

 

⑵ 심판을 받은 영혼들의 행방

 

심판 대상이든 아니든 료의 손길이 닿은 이상 사후 세계로 돌아가게 됩니다. 단, 심판의 결과에 따라 해당 영혼을 단죄할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소멸하기 때문에 예외입니다. 이 외에도 기억을 잃고 도서관에 떠도는 후배의 영혼이나 유원지에서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른 채 방치된 어린아이의 영혼 등,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고 나면 현세에 남은 미련이 없어졌기 때문에 순순히 이행되었죠.

 

세계관 내 천사들은 일종의 저승사자 역할 또한 동시에 수행하고 있는 셈입니다.

 

 

 

⑶ 류는 무엇이 되었는가

 

류는 인간성을 상징합니다. 태생이 천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다채로움과 그 평범한 삶을 동경하죠. 그렇기에 그들에 대한 이해심을 비롯한 다양한 감정을 료보다 일찍 깨우쳤고, 천사로서의 의무와는 별개로 삶에 대한 의문과 그들과 다름에서 다가오는 공허함을 지속적으로 느꼈습니다. 현재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제 발로 고향을 떠나 어딘가에 정착한 상태입니다.

 

어쩌면 노멀엔딩 이후의 료가 그 전철을 뒤이어 밟는 느낌일지도 모르겠네요.

 

 

 

 

⑷ 지도자는 어떻게 처형되었는지

 

본편에서는 '단죄했다'는 간략한 언급만 있었지만, 사실 료가 직접 지도자와 조우했습니다. 그가 본편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맞닥뜨린 영혼들과 달리 오로지 단죄 행위만 오갔을 정도였으니, 분위기는 본편의 심판 장면보다 더더욱 무거웠을 거라 생각합니다.

 

신(아버지)의 개입이 있었기 때문에 도시의 통치자는 사후 세계도 소멸도 아닌 지옥으로 떨어졌다는 피셜입니다. 아무쪼록 생전에 저지른 죄악의 무게가 한 인간이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방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기에 료의 기억 속에서도 이 도시의 지도자는 여러 의미로 인상적인 편에 속합니다.

 

 

 

 

⑸ 모든 심판을 마친 이후의 도시는

 

이미 굿엔딩 기준 료의 말을 빌려 정정된 상태입니다. 노멀 엔딩과 배드 엔딩에는 조금씩 느낌이 다르긴 하나 결과적으로 새로운 도시가 자리 잡게 됩니다. 이후 새로운 도시가 과거의 영광처럼 오랫동안 번영하게 될지, 혹은 소위 역사는 반복된다는 격언처럼 똑같이 비극적인 연쇄를 번복하게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이들의 변화는 이 터전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노력에 달려있겠죠.

 

적어도 천사의 진언(?)이 있었으니 전과 같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을 성싶습니다.

 

 

 

 

 

❹ 개발 종료 이후, 그리고 애로사항

 

이번 작품은 여러 가지 실험적인 요소를 많이 시도한 게임이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변수 기능을 활용해 본 것은 처음이라, 아마추어인 저로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 달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시각적인 부분에서는 이전 게임이 주로 흑백을 사용했기에, 이번에는 컬러감을 살려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채도가 낮게 표현된 것 같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하시는 분들께서 편안하게 즐기셨다면 다행입니다.

 

개발 막바지에는 ‘이 게임이 과연 대회 주제와 잘 맞는가? 혹시 너무 난해해진 건 아닐까?’라는 고민을 저 역시 많이 했습니다. 의도한 메시지는 존재했으나 개인적인 해석이 많이 담겨 있었고, 플레이어마다 다른 관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 또한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고민을 길게 끌지 않은 이유는 이미 구현이 상당 부분 완료된 상태였고, 무엇보다 이 주제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확고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게 있어서 게임 개발의 가장 큰 목적은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든다’는 점이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보다 편한 마음으로 개발을 마무리했습니다.

 

다음 게임잼에도 참여하게 된다면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직관적인 방향에서 제작해보고 싶습니다.

 

 

 

 

 

❺ 마무리 및 근황 소식

 

아래로는 제작 비화와는 별개로 전해드리는 소식입니다.

 

「콘도미니엄」구상 일부

 

 

현재 근황을 말씀드리자면, 세라클로스 시리즈는 체급이 큰 게임인지라 공동제작자와 일정을 조정해 둔 상태기 때문에 잠시 재정비의 시간을 가집니다. 애정이 들어간 작품인 만큼 본인 상황이 안정적일 때 제대로 끝맺음을 짓고 싶어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아무쪼록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느 정도 휴식기를 거친 뒤 기존 세라클로스 배포 이후로 짜인 노선에 따라 준비하고 있던 콘도미니엄」, 혹은 협업 게임을 앞서 제작할 것 같습니다. 같은 호러 게임이긴 하나 노벨 요소가 주된 세라클로스와 달리 해당 게임에서는 공포 성향을 다소 극대화할 예정이라 이 역시 실험적인 부분이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모쪼록 오랫동안 애정을 가져주시는 분들께 실망시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마치며

 

아무튼, 이번 알만툴 게임잼은 정말 기적적으로 일정이 맞았기 때문에 이렇게 새로운 작품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던 것 같습니다. 덕택에 이후에도 값진 경험이 될 것 같아요. 알만툴 게임에 특히나 애정을 가지고 있는 본인으로서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 같습니다. 해당 대회를 주최해 주신 주최진 분들께도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심판천사」를 플레이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후 앞으로 더 좋은 작품으로 찾아뵈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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